어느 날부터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나는 스스로 독서량이 적다고 생각해오지 않았었다. 그래도 매주 1권 이상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읽어왔고, 그래서 내 정서적 인내력 혹은 독서능력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오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긴 여행을 다녀오면서 또 회사에 다니면서 나의 여유시간들은 유튜브와 웹서핑이 차지하게 되었고 독서와 반년이상 거리를 두게 되었다.
'출퇴근하니까 지하철에서 어쩔 수 없이' 혹은 '여행 중인데 책을 어떻게 읽어?'같은 생각들이 독서와 나 사이를 이간질했고, 그렇게 나는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오래간만에 내 생각을 정리할 겸 자유론을 꺼냈는데 하나도 읽을 수 없었다. 글의 문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고 매 5분마다 책을 덮을지 말지 고민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혹시 책이 너무 어려워서 그런 것은 아닐까? 라는 자기 위안을 하며 다른 책들도 집어보았지만 상황은 같았다. 나는 집중하지 못했고, 책의 내용은 내 머릿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허공에서 맴돌기만 했다. 결국 집중하지 못한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내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버렸고, 나는 책의 서문에 갇혀 본문으로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는 바보가 되어버렸다.
도대체 왜 그런걸까?
내게 독서는 크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책 읽기가 좋아서 철학과에 갔고, 가서도 특정 분야가 아니라 온갖 지식들을 닥치는대로 읽어왔다. 덕분에, 세상을 보는 눈이 틔였고 인생도 더 재미있게 살고있다고 자신한다. 그렇게 책읽기가 멀지 않았기에 그런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더욱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소중한 부분을 잃고 나서야 나는 도대체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를 고민하던 중 나는 이전에 읽었던 한 책을 생각해 내게 된다. 책의 이름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내가 20살이었던 2015년 학교 수업 철학명저 읽기에서 첫 번째로 읽었던 책이다. 그때 인터넷을 많이 하면 바보가 된다는 책의 내용은 내가 생각해 오던 진실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에세이를 썼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책에 나오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자극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렸다.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하나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주변에서 내게 주는 자극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하나에 몰두하기보다는 자극을 좇는데 집중했다. 책을 보면서도 내 휴대전화를 5분에 한 번씩 쳐다봐줘야 하고, 나는 그럴 때마다 다시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많은 정신적인 자원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반복적인 재-집중 자원의 낭비는 나로 하여금 독서를 포기하게 하는 큰 요인으로 발전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살고 싶다.
원인이 있으면 해결책도 있는 법. 나는 20살 이후 읽지 않았던 그 책을 다시 손에 잡았다. 그리고 힘들었지만 책을 완독 하고자 큰 노력을 기울였다. 휴대전화는 다른 방에 두었으며 내 집중을 방해할 노래도 듣지 않은 상태에서 독서를 시작했다. 내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배제한 채 독서할 수 있는 환경을 꾸리는데 집중했다. 그렇게, 책을 완독 했고 나는 책을 통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다시 고민했다.
나는 원래 SNS랑 담쌓은 사람이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인스타 스토리가 뭔지도 몰랐고, 또 인스타에 부메랑 동영상이 뭔지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모르다 보니까 대화 주제에서 거리가 계속 벌어졌고 한번 이 간극을 메우고자 최근 여행을 가면서 몇몇 SNS들을 시작했다. 아주 본격적으로 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내 일상을 가끔 올리고 친구들의 일상도 살펴봤다.
SNS를 시작하니 누구나 그러하듯, 누가 좋아요를 누르고 누가 내 글을 봤는지 신경 쓰게 되었으며 그것 때문에 SNS에 신경이 집중된 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내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사회적인 행동들이지만, 나는 이런 행동들이 나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자극들로부터 해방되는 것만이 내가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상자의 동물이 되기 싫다.
이전에 스키너의 심리상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은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가 가진 오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스키너가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하는지였다. 도구적 조건형성, 즉 처벌과 강화를 통해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데 나는 최근 내 SNS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스키너가 연구를 위해 키운 상자의 동물들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를 통해서 나를 자극하고, 이를 통해 내가 더욱 좋아요를 갈망하도록 만드는 현대 앱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스키너의 상자와 닮아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 그 앱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즐거움들 그리고 자극들을 위해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집중력과 사고력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집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누군가의 가벼운 좋아요보다는 힘들지만 독서를 통해 얻는 지식이 더 좋다. 누군가가 내 삶을 알아주기보다는 내가 내 삶에 대해 더 알고 싶다. 그래서 다시 한번 힘을 내서 SNS와 휴대폰이 주는 자극을 없애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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