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42서울

문돌이 개발자 실패기 발표 회고(2019. 12. 42서울 OT발표)

susong 2022. 11. 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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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 후 국방부의 시계는 이제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나는 이제 사회로부터 독립된 존재로서 28개월 동안 군인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좋게 말해 28개월 간의 독립이지 사실상 28개월 간의 경력단절이다.

 

나는 돌아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

 

군대에 가서 무엇을 준비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같은 생각은 나랑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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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더 효과적으로 돌아와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28개월 후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생각이 시작되었고, 나는 학교 교정을 거닐다 하나의 현수막을 발견했다.

 

'3무(교수, 교재, 학비) 교육방식, 42서울 1기 모집'

 

현수막과 42서울에 대한 내게 첫인상은 이랬다.

1. 나는 정해진 틀보다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효율이 좋은 사람이니, 잘 맞겠다.

2. 1기니까 경쟁을 치열해도, 들어가면 좋겠다

   - 무엇이든 초기 점유가 좋으니까

3. 나도 도전할만하겠다.

 

그렇게 나는 42서울에 지원하게되었고, 결과적으로 합격했다.


42서울에 들어가면서

어떤 기관 혹은 단체와 처음을 함께한다는 것은 그곳의 변화하는 모습도 본다는 것이다.

42서울을 준비하신 분들은 열정이 넘쳤고, 아직 초기이기에 다양한 의견과 경험에도 귀 기울이는 곳이었다.

 

학장님은 의지가 강하신 분이셨고, 그분과 함께 일하는 스텝들도 열정이 넘쳤다.

나는 이 42서울에 합격하기 전부터 강한 소속감을 느꼈고, 이 단체의 일원이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군역 

 

선발과정을 기다리며, 당시 체크인 미팅에서 반쯤 농담 삼아 스테프들이 '군대 안 갔다 오신 분들은 지원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던 내용들이 계속 귀에 맴돌아 미칠 것 같았다.

 

이 스트레스 때문에 대한민국 헌법 39조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를 곱씹으며 잘될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잠들기도 했다.(꿈에서 합격하고도 군대 때문에 합격 취소되어서 헌법 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내가 선발과정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나는 이곳이 아직 체계가 완전히 잡힌 곳은 아니라 어떻게 내가 비집고 들어가면 아예 체계에 군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어느 곳에서나 영향력이 강해지면 해당 개인을 배제할 수 없다.

아직 초기인 단체이니 영향력 높이는 것은 간단하게 얼굴만 알려도 가능할 것이다.

 

인지도 혹은 영향력을 높이자!

 

그래서 나는 오리엔테이션 발표에 내 인생을 소개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엇을 소개할 것인가?

자신의 인생을 소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것만 이야기하면 자랑하는 이야기가 되고, 

안 좋은 이야기만 하면 청자는 도대체 저 사람은 왜 나왔나 싶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체의 목적과 나의 인생이 맞닿는 부분을 찾았다.

"내가 문과생으로서 개발자로 전환하면서 겪은 실패들"

 

내 발표의 청자들은 문과일 수도 있고, 혹은 나와 같이 전문분야 전환을 시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배경 환경을 가졌든 간에 모두가 개발자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나와 같은 길을 걸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준비했다.

내가 해보고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다른 이들은 비슷한 슬픔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과 회환을 파워포인트에 그리기 시작했다.

 

발표의 골자는 아래와 같았다.

1. 과연 전공생과 비전공생은 무엇이 다른가?

   - 나는 어떻게 느꼈는가?

2. 나는 반전공생으로서 무엇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가?

   - 안 달라졌다면, 무엇 때문인가?

   - 과정 중에 내가 후회스러웠던 것은 무엇인가?

3.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발표시간은 길지 않았기에 꼭 하고 싶은 말들만 골라서 최대한 효과적인 전달법으로 구성했다.


발표 영상


발표가 끝난 이후에

이 날 오리엔테이션에는 특이한 시스템이 있었다.

마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청자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발표자에게 투표할 수 있었는데,

나는 이날 가장 높은 선택을 받은 발표자였다.

(동정심 작전이 통한 것 같다)

 

이후 OT에서 발표와 관련된 몇 가지의 질문을 더 받고 난 후 나는 1기 모두에게 얼굴도장을 찍고 라피신(선발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누군가는 군대 가기 전에 열심히 놀아야 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내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싶었고,

나는 군대 가기 직전을 42서울 선발과정에 갈아 넣었다.

그리고 그렇게 합격을 했고, 본과정은 시작도 하기 전에 군대로 튀어버렸다.

(죄송합니다)

 

당연하게도 42서울에는 휴학에 대한 고려도 제도도 존재하지 않았고

나는 휴학 신청을 알리자마자 곤혹스러운 스테프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휴학이라는 제도 특히 군 휴학과 관련된 제도는 아직 존재하지 않을 때였기 때문에 나는 또 한 번 속이 타며 기다렸다.(나 같아도 이렇게 빨리 1기생이 휴학하리라고는 상상 못 했을 것 같다.)

 

'안되면, 뭐 내 다른 경력으로 다른 방법으로 먹고살면 되는 거지~'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본과정 힘들게 합격해놓고 또 다른 고생을 하는 노력의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군 임관 직전에 가서야 휴학이 승인되었고,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군역을 다할 수 있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스테프분들에게 곤혹스럽게 해 죄송한 마음뿐이다. 특히 폴라베어님

 

그렇게 2022년 8월 나는 1기생으로서 돌아왔다.

보컬(스테프)이 된 동기 빼고 남은 동기는 아무도 없었지만 이곳의 문화는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42서울로 돌아옴으로써, 그렇게 나는 감사하게도 다시 프로그래머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해요 42서울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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